26.02.22 (일)
소소한 사건들 - 롤랑 바르트
필사
책 배경: 롤랑 바르트가 1968-69년 모로코(탕헤르&리바트) 남부에서 보고 들을 것들을 모아 만든 책. 일종의 ‘유희’로서 그 유희의 대상은 모로코가 아니라 ‘소설적인 것’(그가 좋아하는 본질상 조각들)임.
—> 순간순간의 즐거움처럼 불연속적이고 유동적인 것… 이 텍스트 속의 해석 같은 것은 찾기 힘들고 의미가 없음. 만남과 사건들 위주로, 개개인의 캐릭터가 배제되어 있음.
소소한 사건들 = 미니 텍스트, 쪽글이나 하이쿠(일본 5.7.5 음절의 정형시)와도 같은 특징이 있음. 의외성 / 정합성, 균열 / 엉뚱 약자의 말뜻을 갖고 노는 언어 유희임. (by. 프랑수아 발)
21P | 남서부의 빛
이런 식으로 기억이 형성되는 나이에, 나는 ‘거대한 현실들’로부터 오직 그것들이 내게 부여하는 ‘감각’만을 취했던 것이다. (냄새, 피로감, 목소리, 돌아다니기, 빛 즉 실재에서 어찌 보면무책임한것, 그ㅡ리고 의미라면 오로지 훗날 잃어버린 시간의 추억을 형성한다는 의미뿐인 것)
(내 어린시절 중 파리에서 보낸 시기는 이와 전혀 달랐다. 물질적 곤궁에 찌들었던 그 유년은 말하자면 빈곤이라는 것을 혹독하게 추상화해 놓은 개념이었고, 그 시젏의 파리에서 나는어떤 ‘느낌’이라 할 만한 것을 갖지 못했다.) 그래서 내가 추억으로 내 안에 굴절된 모습 그대로의 남서부 지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주베르가 공식화해 놓은 이런 말을 믿기 때문이다. “사람은 자기가 느낀대로 속마음을 표현해선 안 되고, 자기가 기억한 대로 표현해야 한다”
=> 특히 파리에 대한 부분이 대충 공감됨. 내 무색무취의 중삐리시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.
…
난 그런 것을 어떤 말로 공식화해 표현할 줄은 몰랐어도 느끼고 있기는 했다. 나는 이미 남서부 지방을 ‘읽고’ 있었고, 하나의 풍경의 빛, 스페인에서 불어오는 바람 아래 나른해진 하루의 무해에서부터 담론의 한 유형, 사회의 지방적인 유형 전체에까지 이르는 텍스트를 죽 훑고 있었다. 왜냐하면 어느 고장을 ‘읽는다’는 것, 그건 우선 육체와 기억에 따라, 육체의 기억에 따라 그 고장을 인식하는 것이니까. 작가에게 주어지는 자리는 바로 이 지식과 분석의 입구라고 나는 생각한다. 작가는 유능한 사람이기보다는 의식하는 사람, 즉 능력의 틈새 자체를 의식하는 사람인 것이다.
72P | 소소한 사건들
압텔라타프 - 그렇게도 관능적인 그 - 는 바그다드의 교수형이 정당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. 재판이 그리 신속하게 이루어진 것을 보면 피고인들은 분명 유죄라는 얘기다. 그래서 이 경우 교수형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. 교수형이라는 바보짓의 야만성과 그의 몸이 지닌 생생한 온기, 둘 사이의 모순, 그가 이렇게 징벌을 옹호하는 뻔한 신조를 늘어놓는 동안에도 내가 상당히 얼빠진 상태로 계속 쥐고 쓰다듬는 그의 두 손은 언제나 내 것이라는 사실.
=> 생각이 다르고 지향점이 달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함께할 수 있다.
75P | 소소한 사건들
파리에서 올 때 ‘기념품’을 사다 달라던 청년에게 그런 것을 사다주기가 난감함.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어떤 멋진 부가품을 줄 것인가? 라이터? 그걸로 불 붙일 담배나 있나? 어떤 기호처럼 돼버린 기념품, 즉 쓸모가 없어도 너무 없는 물건을 고른다. 놋쇠로 만든 에펠탑.
=> 기념품을 살 때 생각한 것: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 제품인지? 난 과연 친구들에 대해 잘 알고 선물하고 있는 것일까…
*누아르: ‘검은 발’이라는 뜻으로, 한때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의 알제리, 모로코 등지에 이주해 살았던 프랑스인을 일컫는 속칭